《고객님, 정체성은 착불인가요?》
이시마 X 정설향 2인전
2022.12.06- 12.18. 16:00~22:00 (18일 ~19:00)
무음산방 (서울특별시 마포구 숭문4길 8 1층)
- 착불은 택배 물품을 수령할 때에 해당하는 요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받는 사람이 요금을 지불하는 것을 말합니다(「택배 표준약관」 제8조제1항).
- 착실하게 불안한.
어떤 전지전능한 존재에 의해 ― 그것이 신이든 인간이든, 우리는 이세계에서 태어난다. 그 존재는 많은 것들을 한 스푼, 두 스푼 넣어서 인간을 창조하지만 막상 중요한 정체성은 착불로 보내버리고 만다. 따라서 정체성에 대한 책임은, 불이익은, 그 값을 치르는 것은 우리 자신이고 그 기간은 평생이다. 그렇게 랜덤으로 특정한 정체성을 배송받은 일부는 평생 착실하게, 불안해하며 댓가를 치른다. 이시마와 정설향은 이렇게 질문한다. 왜 정체성은 댓가를 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그 수금처는 과연 어디인가? 정체성의 ‘정체’는 무엇인가?
《고객님, 정체성은 착불인가요?》를 통해 이시마 작가는 정체성이 만드는 균열들을 이용해서 복수하는 공포스러운 인물들을 그리고, 정설향 작가는 정체성의 본질을 조각내고 재조립하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이시마는 전래동화를 기반으로 한 무빙이미지 트릴로지, <전례X동화The new tale>를 통해 소수자가 만들어내는 전복적 가능성으로의 공포를 제안한다. 대부분 전래동화들의 공통점은 어린 여성이 새엄마 및 이복 자매에게 아동폭력을 당하고 친부는 이를 방치하는 것에 있다. 전통적인 성녀/악녀 공식을 따르며, 어리고 순종적이며 아름다운-그래서 결국에는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여성 VS 나이 많고 자기주도적인 욕망을 추구하며 못생긴-그래서 결국에는 비극적 엔딩을 맞이하는 여성을 그려낸다. 이 와중에 이 둘의 연결점이 되자 만악의 근원인 친부는 무능하지만 연민의 대상이 되는 그저 멍청했을 뿐 나쁜 사람은 아닌, 즉 책임의 소지가 없는 인물로서 위치지어지며 사실은 자신의 책임이었던 아이의 육아를 방치했던 것을 회피하고, 나아가 육아와 살림은 여성의 일이기 때문에 남성은 개입하기 못했다라는 가부장적 공식을 완성한다.
그 구원 ‘당하는’ 어린 여자 아이들은 무섭고 매섭게, 악하게 귀환한다. 이 악인들은 솔직하고 영리하다. 자신에게 부여되는 소수자 정체성을 이용한다. 어리니까, 여자니까, 성소수자니까, 폭력의 피해자니까 ― 순결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위축되고, 아플 것이라고 맘대로 개개인에게 맺혀진 상을 인지하고 도구화한다. <수박 그럼 이게 우리 잘못이겠어?>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살아가는 은서는 오로지 자신의 일시적인 평온을 위해 타인을 유인해서 억압하고 부린다. <KZPZ>의 두 자매는 각자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서로를 속고 속이며 이용한다. <[VLOG] 심청이 인당수 퐁당! D-DAY GRWM + Q&A 나랑 같이 준비해요/ 질문답변/ 가을웜톤/ 모닝루틴/ 여중생메이크업/ 한복 /청소루틴>의 심청이는 순진하게 악을 폭로하고 죽음으로서 수동적인 공격을 완성한다. 즉, 스스로의 정체성을 질문하고 탐구해서 제 입맛에 맞게 이용하는 악당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시마는 현실에 있는 계층들을 망상의 차원으로 치환해서 재현하는 작업을 통해 소수자들의 겪는 차별의 층위를 벼려내어 현미경 아래에 두고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키는지 실험한다. 특히 정동으로서의 공포의 전복에 집중하며 개인전 《가을놀이, 탈영역우정국(2022)》에서는 피해자 정체성을 가진 가상의 인물 ‘윤’의 에세이를 통해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한국퀴어영화제 상영작인 <28J3JCHF-P6(2021)>에서는 연대의 범주가 야기하는 공포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고, 정면을 무표정으로 응시하는 여성들의 초상을 수집하는 작업 <정면을 보는 비체들 (2022~)>, 기억소거를 통한 사회적 계급과 계층의 이동을 질문하며 평등한 토론 환경을 조성하는 실험 <우리는/자신의-기억을-지우는-것을/허용해도-되는가?, 육일봉 (2021)>, 판소리 악보의 회화적 가능성을 탐구한 작업 <일칠다, 서교문화실험센터 (2022)> 등을 선보인 바 있다.
정설향은 나 자신은, 우리 모두는 어떻게 정의될까? 먼저 나는 내 정체성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른 존재를 연기하고, 주변에 녹아들어 나를 숨겨도 자신을 인정할 때가 언젠가 찾아온다는 것을 안다. 정확한 단어로 집어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 안개 너머로 걸어가고 탐구하고 실험해보기로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브제를 활용한 설치 작품 두 점을 선보인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껍데기를 벗겨내면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깊숙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 과연 본질인 걸까? <자화상>에서는 기존의 자화상 작업 방식에 따라 붓을 들어 하얀 캔버스 천 위에 물감을 칠해 나가는 대신, 파편화된 존재를 그대로 전시한다. 작가 자신, 캔버스 틀, 천, 붓, 물감을 각각의 개체로 두고 서로 다른 본질에 대해 탐구함과 동시에 그들이 합쳐졌을 때 하나의 존재가 되는지, 혹은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각각의 존재로 남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주입식>에서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전지전능한 절대자의 입장이 되어 하나의 존재를 변화시키고 탄생시킨다. 우리가 어떤 우주적 존재로부터 정체성을 ‘부여’받는다고 가정한다면, 그 우주적 존재-절대자는 나에게 어떤 성질을 얼만큼, 어떻게 섞어서 주었을까? 정체성을 완성하는 주요 재료인 비밀용액은 그 종류와 주입되는 용량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낸다. 절대자의 비밀용액을 전량 공수하지 못했지만, 일부를 가지고 목이버섯에게 실험하기로 한다. 비밀용액을 오남용하거나 타인에게 함부로 정체성을 부여할 경우 후회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인지하고 이번 실험은 목이버섯의 동의를 받아 진행함을 알린다.
정설향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 나, 너, 물체 등의 존재를 각각의 공간space으로 은유해 그 관계와 연결을 탐구하는 작업을 한다. 《PAN ASIA 2021 (가든 송자 스페이스 소파, 2021)》의 퍼포먼스 작업 <Damaging (2021)>을 통해 나 자신, 내부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를 연결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La fete de lumieres (에뛰드아트, 2022)》에서는 소속되고자 하지만 소속될 수 없는 존재를 이야기하는 실험 영상 설치 작업 <걷기연습 (2022)>과 <비체낙원 (2022)>을 선보였다.
글: 이시마 (@sima.summ)
이시마leesima <전례X동화The new tale>, video trilogy, 23:45, (2022)
<수박 그럼 이게 우리 잘못이겠어? F*ck! Is any of this our fault?>, video, 05:38 (2022)
출연: 정설향
<KZPZ> 09:07 (2022)
출연: 송동영, 정설향
믹싱&마스터링: 25# Back to the Garden
<[VLOG] 심청이 인당수 퐁당! D-DAY GRWM + Q&A 나랑 같이 준비해요/ 질문답변/ 가을웜톤/ 모닝루틴/ 여중생메이크업/한복/청소루틴 [VLOG]Shimchung Indangsoo SPLASH! D-DAY GRWM +Q&A> 09:00 (2022)
출연, 촬영: 정설향
정설향Seol Jeong <자화상self-portrait>, acrylic, brush, canvas, dimensions variable, (2022)
정설향Seol Jeong <주입식injection>, mixed media with wood ear, dimensions variable,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