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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이름에서 살아남기, 동국대학교 대학원신문, 학술서평(젠더비평)

어릴 적 내 이름에 들어가는 한자가 너무 어렵다고 투정부린적이 있다. 그럴 때 마다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소망과 노력을 거쳐 만들어진 귀한 이름이니 감사히 사용하라고 하시며 내 사주, 내 한자의 뜻을 장황하게 설명하곤 하셨다. 60년전 지어진 엄마 이름은 그러지 못했었으니까.


이름은 사회에서 개인이 위치한 계급을 함축적으로 은유한다. 운명공동체로서의 가족의 의미가 희석되고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의 가족은 부모형제가 쉬이 서로에게 자아를 의탁하며 가족의 성공은 곧 나의 성공으로 여겼다. 이때 한정된 자원 안에서 성공하도록 지원받은것은 남성, 지원하도록 노동력으로 치환된 건 여성이었다. 여성은 아들의 대성을 위해 돈을 벌어다주는 손, 혹은 남의 집 아들을 낳아 줄 몸이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안에서 여성의 이름은 윤택하지 못했다. 자본과 교육이 없는 집에서도 장남 이름에는 거금을 들였고, 돈이 넘실대는 교육자 집안에서도 딸 이름은 되는대로 지었다. 호적에도 기록되지 않으며 구조적으로 바깥에 위치지어진 이름은 그것이 어떤 예쁜 형태를 가지더라도 이름이 되지 못했다. 여성의 이름이 지어지는 방식은,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을 대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의 염원을 담아 사주팔자를 고려해서 이름을 짓는다는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름은 부모님이 얼마나 그를 애정하는지 함축하고 있는, 내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편지와 같다. 이렇게도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 편지는 서로 친해지고 서서히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첫 만남에 바로, 혹은 나도 모르는 누군가도 알 수 있는 공개적인 서신이다. 이력서 첫줄에 외치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아들을 원했었다”고.


불과 40년 전에 이름 지어진 영자, 숙자, 말자들의 평생은 그러했다. 그들은 그런 이름을 매일같이 사용해야 했다. 딸을 낳고 상심했다는 이름, 아버지의 첫사랑 이름, 옆집 언니랑 똑같고 같은 반에 여덟은 같은 이름. 어떤 이는 혼인신고서를 내기까지 자신의 이름을 남편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 이름은 사업으로 강남에 집을 사고도 가사노동과 독박육아를 하지 못한 죄책감에 슬퍼하게 하고, 바람핀 남편과 이혼하지 못하게 한다. 내 이름이 타인의 부정과 불합리와 추를 마주할 정도의 무게로 다가온다. 이렇게 공공연하게, 일상적으로 파고든 이름은 스스로를 위계의 하단에 자연화해버리며 타인이 정의한 나에 순응하게 한다.


그래서 그 여성들은 스스로 이름을 달리했다. 세례명을 사용하고, 개명하고, 직장 내 직함으로 불리길 바랬다. 내 이름보다 철수엄마로서 사는것이 더 자랑스러웠다, 원가족이 아닌 내가 스스로 일궈낸 가정에서 차지한 정당한 내 자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딸을 조금 더 사랑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권리를 빼앗긴 경험을 삶을 통해 알기 때문에, 그리고 기본적인 것 마저도 빼앗겼던 삶에서 누리지 못했던것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딸의 이름은 고작 이름이 아니라 내가 받지 못했던 것들을 주는 시작점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름들’은 현재진행형이다. 00년생, 90년생중에 이럼 이름들은 존재한다. 그렇게 다시 일상에서 내 이름과 투쟁한다. 쓰다 보니 정이 들어도, 괜찮은것 같아도 다시 싸운다. 그리고 다시 질문하게 된다. 나를 내 이름에 저항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