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
내러티브-퍼포먼스-사운드를 잇고 변주하기
계승되는 여성들의 죽음의 이유, 한국 퀴어 커뮤니티에서 무성애자의 자격처럼 좁은 범주의 정체성들에서 범주를 넓혀 그러한 정체성들을 탈락시키는 규범들에 대해서 질문하고자 한다. 퍼포머의 신체적 한계, 감정, 방해들과 같이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로 내러티브를 변주한다. 즉 내러티브와 은유를 통해 정교하게 고발하고 지적함과 동시에 퍼포머로서 자신의 몸을 샤먼의 몸으로 사용하며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우연함의 영향을, 그래서 부서지는 규범을 말한다.
특정한 소수자들을 드러내고 질문하기
소수자들의 언어를 내러티브로 비틀어 은유하고 질문한다. 자신을 설명할 언어가 많지 않은 소수자들은 이미 정의된 언어들에 맞추어 자신을 정의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 중 정체성과 맞지 않는 것들은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 쉽고, 소수자 정체성의 규범에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없는 척 하더라도 이것들은 있고, 소속되기 위해 이를 무시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느껴야 하는것과 느끼는 것의 충돌을 경험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상황들을 내러티브를 통해 좁게 설정하고, 은유를 통해 관객이 가진 범주의 자격들에 대해 질문을 던져 왔다.
무속과 퀴어, 민중과 신
사물놀이를 오랜 기간 공연하고 연출하는 경험과 동시에 “1장: 식민주의 드래그의 의례(儀禮) 전문가들” <퀴어 코리아 (2023)>의 번역과 같이 샤먼과 퀴어, 민간신앙과 대중의 연결을 연구해 왔다. 나이, 지역, 성별, 외모 등을 모두 버리고 신의 매개체로서 사는 샤먼은 그 본질적 정의에 따라 퀴어할 수 밖에 없다. 퍼포머로서 스스로 샤먼이 되거나, 권력자/전지전능과 대중을 잇는 매개체로서 샤먼의 역할을 내러티브에 녹여 은유로써 활용하고 있다.
내러티브의 단편적 실험과 매체의 점진적 확장
한 내러티브가 한 작업으로 완결되는 단편 실험과 한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여러 작업을 만들어 매체를 확장하는 실험을 시도해 왔다. 내러티브는 민간신앙, 전래동화와 같이 전통적인 민중의 언어를 경유하고 있다.
단편 실험의 형태로는 커밍아웃 한 레즈비언이 쥐에게 손톱을 먹여 자신을 대체하고, 자신은 커밍아웃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과정의 충돌을 통해 커밍아웃 이후의 아름답지만은 않은 삶을 드러내는 <수박 그럼 이게 우리 잘못이겠어?(2022)>,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소녀들이 자신의 피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상처를 덧그리며 관객에게 피해자의 범주를 질문하는 <KZPZ(2022)>, 무성애자로서 퀴어 커뮤니티 내외에서 들은 퀴어로서의 자격을 의심하는 말들을 저주로써 되돌려주는 <유성애 잔치의 우울(2024)> 등이 있다. 세 작업 모두 영상과 사운드가 조합된 형식으로, 특정 상황의 내러티브를 섬세하게 설정하고 드러내는 과정에 집중했었다.
내러티브를 전시 전체로 확장한 개인전 <가을놀이(2022)>에서는 남매성폭력 생존자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소설을 집필한 후, 동일 내러티브를 다른 매체로 재현했었다. 퍼포먼스 <dir>에서는 한강에 직접 들어가 실제 생존자들에게서 받은 약봉지로 만든 뗏목 위에 한 시간 동안 오르려고 노력했고, 이를 영상으로 기록해 설치했다. 낭독 설치 <가을놀이>에서는 소설을 7시간 분량으로 녹음한 후 암전인 방에서 누워 관람하도록 했다. 영상과 사운드가 결합된 <가을놀이>에서는 춤을 추는 여성을 배경으로 돌림 노래가 나오며 나레이션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사자들과 4년간의 긴밀한 소통을 기반으로 한 소설 <가을놀이>를 출판하고, 8명의 퍼포머와 협업해 각각 2시간 동안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전시 공간에서 행동하는 공동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운드 퍼포먼스와 예측 할 수 없는 신체의 역할
영상, 사운드, 텍스트, 퍼포먼스, 설치 등의 매체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통해 내러티브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퍼포먼스에서 예측할 수 없는 퍼포머의 경험 - 신체, 감정, 노동하는 괴로움 -을 통한 내러티브의 변화들을 실험하려 했다.
<비단감옥 (2023)>에서는 퀴어 댄서들에게 작곡한 사운드를 처음 들려주면서 즉흥 움직임을 영상으로 담아내서 전시하고, 이를 전시 공간에서 다시 한번 실연하는 것을 통해 완벽하게 내 통제 아래 있는 것(사운드)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것 (댄서의 움직임)의 일시적인 충돌을 기록하고, 이를 전시 공간에서 재연해 보고자 했다.
<일인분 (2024)>에서는 진도 별신굿의 형식 중 일부를 응용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유일한 퍼포머로서 눈을 가린 채 천을 몸으로 찢어가며 노래를 부르고, 목과 얼굴에 천이 쓸리는 고통을 느끼며 예정된 대본과 다르게 행동했다. 넘어지면서 놀라서 가사를 까먹어 개사를 하기도 하고, 숨 쉬는 위치를 까먹어서 음정을 다르게 내기도 했다. 자신이 만들고 수없이 연습한 퍼포먼스를 부수는 과정에서, 정형화된 언어의 밖으로 새어나오는 본능적인 반응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