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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윤경과 재은

윤경씨, 그는 그렇게 불리는걸 좋아했다. 재은이 어머님으로 통칭되었던 내 12년의 학교 생활에서도 그는 꿋꿋하게 윤경씨를 전파하고 다녔고, 나도 그를 언제나 윤경씨라고 불렀다. 그는 나를 재은씨라고 불러주었다. 윤경씨가 고시생이 된 것은 내 나이 스물, 그의 나이 54세였다. 그리고 내가 취업에 실패하고 사랑에도 실패해서 엉엉 울며 집에 돌아올 무렵 그는 공무원에 합격했다.

어릴 적 윤경씨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라며 소풍날 참외를 깎아서 준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대로 응급실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아야 했다. 참외 알러지였다. 몇시간 뒤 헐레벌떡 나타난 윤경씨는 *황당*해보였다. 임신때도 먹었던 참외를, 그가 가장 좋아하는 참외를 내가 생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보였다. 내 손을 잡고 벌벌 떨면서도 되뇌였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참외를, 못 먹는다고? 그 후에도 우리집 식탁에는 종종 참외가 올라왔다. 별 일은 아니었다. 그는 참외를 좋아했고, 난 먹으면 죽을 수 있지만 안 먹으면 그만이었으니까.

기억소거관리부에서 일한다고 들었을 때 찰떡같은 부서를 배정받았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본인의 기억도 좀 소거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많은 것을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이니까. 지나가는 혼잣말로 "반지가 어디있더라..."라고 하면 무심하게 툭 던지는 책상 서랍 세번째 칸 오른쪽, 이라는 말에 나는 소름이 돋으면서도 감사하곤 했다. 감사해야되는데 소름이 돋는 내가 역하기도 했고. 나는 내내 그가 불유쾌했다. 내가 얼마나 불유쾌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줘서. 영동대교를 아우토반같이 달리는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면서도 그 짜릿한 속도를 상상하는 나의 소박한 일탈조차 눈치채고 훈육하는 사람같아서.

**

"윤경씨가 하는 일은 어떤 일이야?"

반년간의 도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 우리의 첫 식탁은 가지고추볶음, 김치찜, 대구탕이었다. 그는 우리가 떨어져 있던 반년동안 끈질기게 매일 한국에 돌아오면 어떤 밥을 먹고 싶은지 물어왔었고 나는 그 때 마다 당장 먹고 싶지만 그곳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적어 보냈었다. 월요일에는 민어회, 화요일에는 롤캐비츠, 수요일에는 약과, 목요일에는 파전, 금요일에는 바밤바, 토요일에는 하루 쉬고 일요일에는 오뎅탕.

어김없이 짜고 신 식탁에 저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을 애써 피면서 실감했다. 내가 다시 그의 곁에 돌아왔다고. 먹지 않는 것들을 먹은 듯해보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대화와 현란한 숟가락질이 필요하다. 윤경씨가 지금 아마도 가장 관심이 있고 많이 말할 수 있을 법한 주제를 슬쩍 꺼내서 저절로 말하게 하는 것이 제일 편하다. 예를 들면 그가 요즘 가장 집중해있을법한 일. 기억관리소거부라고 했을것이다.

"윤경씨가 일하는 기억소거관리부 요즘 난리도 아니더라? 내 친구들만 해도 벌써 몇명 지우고 왔는데, 글쎄 다들 기억이 지워져서 그런가 돈 아깝다고 그러는거야. 카드값은 나가는데 돈 쓴 기억은 없으니까 억울한거지. 근데 그건 나도 똑같다? 나도 돈 쓴 기억은 없는데 잔고 보면 누가 훔쳐간거 같애. 윤경씨도 근무 끝나고 몰래 기억 지우고 그런거 아냐?"

여기에 적당히 농담하는 위트있고 애교있는, 그러나 엄마한테 적당히 관심있는 딸처럼 후훗하고 웃어주면 그만이다. 그러면 윤경씨는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하겠지. 그 있는지 없을지도 모르는 부서가 얼마나 대단하고, 자신의 일은 얼마나 사회에 도움이 되고, 동료는 얼마나 우수한지. 대충 한 꼭지당 10분이 걸린다고 하면 30분, 밥그릇을 비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이제 숟가락을 적절히 대구탕에 담궈서 고춧가루를 좀 묻혀두고 김치찜의 큰 줄기로 밥을 덮은 다음 아래 있는 맨밥을 젓가락으로 퍼먹으면 그릇이 곧 빌 것이다.

"내가 자세한거는 보안때문에 얘기는 못하지만 재은아 넌 그런거 하지 마라? 엄마가 맨 처음에 이거저거 배워야 된다고 그래서 몇개 좀 쓰잘떼기 없는 기억들은 지워봤거든. 지워보니까 아유, 애초에 지우고 싶은 기억이 될 것 같으면 그냥 안 하면 되는걸 왜 하나 몰라. 다들 지우는 기억 뭔지 보면 아주 하나같이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지워. 아니 오늘은 어떤 처녀가 자기 전 남자친구들의 기억을 지워달라는거야 이제 결혼할거라고."

두근.

"처녀라니. 말이 좀 그렇다."

"결혼 안 했으면 다 처녀지 왜. 재은이 너도 처녀잖아. 아무튼 너도 그 아가씨처럼 남자친구 막 사귀지 말고 제대로 된 한명만 만나. 내가 결혼하라고 까지는 안 하는데 남자는 만나야지."

두근.

"윤경씨, 남자친구라니?"

"내가 또 주책이었니? 하긴 요즘 애들은 연애 얘기 이런거 하는거 싫어하더라."

"아니, 그 얘기를 하는게 아니잖아. 남자친구라니."

"남자친구? 그게 왜. 아무튼 그래서 말이야 근데 그 아가씨가 또 임신을 했더라고. 이거 기억 지우면 혹시 애기한테 영향 있을지 물어보는데, 그 아가씨가 예전에 한번 지운적이 있어서 그런가 이번에도 없어지면 또 못 낳을까봐 걱정이 걱정이 많더라고. 그럴거면 그냥 처음에 낳지 왜 지웠을까 몰라"

두근

"듣고 보니까 그 남자가 이 남자가 아니더라고. 내가 보니까 그 죽은 애 아빠 기억을 지우고 싶어가지고 온거같더라. 그 남자가 좀 때렸나봐, 그 아가씨를."

두근

"그럴거면 그냥 애아빠랑 결혼해서 낳고 잘 살지. 사람이 때리다가도 집에서 잘 하면 또 바뀌거든. 너 경실이 이모 알지? 그 이모도 남편이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살다보니까 그렇게 돈 잘 벌어오고 애를 아끼더라고. 일등 신랑감이야."

경실이 이모는 작년에 죽었다. 그 일등 신랑감이 계획하고 지른 불에서, 일등 신랑감이 부러트린 다리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우리집 안방 안쪽의 보라색 상자 안에는 경실이 이모의 유골함이 잠들어 있다. 납골당은 커녕 장례식조차 치루지 못했던 이모의 유해를 뿌려주려 우린 여수에 갔었다.

이모는 여수 밤바다 노래를 좋아했다. 그 노래가 나올 즈음 결혼했던 이모는 사실 나랑 다섯살 밖에 차이가 나질 않았다. 언니라고 부르라고 여러번 얘기 했었지만 스무살 대학생이었던 나는 유럽 여행을 마치고 기념품이 가득한 캐리어를 끌고 집에 왔었고, 그는 토한 손수건, 일회용 물티슈 따위가 가득한 유모차를 끌고 있었다. 국화차를 사이에 두고 앉은 그는 투명한 크레바스 건너편의 아득한 존재와 같이 느껴졌다.

여수에서 밤바다를 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었다. 자주는 어려워도 가끔 아이와 남편의 손을 잡고 폭죽을 터트리고 싶다고 했었다. 자신의 잡초 같은 삶은 짓밟는 익명의 타인을 피하는데 열심이었다고. 그래서 사랑하고 싶다고 했었다. 아무도 없는 겨울 밤바다에서 폭죽을 몇 방 터트린 후 윤경씨와 나는 조용히 그의 유골함을 안고 누워있었다. 하얗고 작고 차가운 윤경씨의 손. 하얗고 작고 차가운 경실 이모. 하얗고 작고 차가운 재은씨.

"재은씨, 재은씨는 사랑을 해."

발끝으로 파도가 천천히 밀려오고 있었다. 파도에 모든 물기를 빼앗긴 버석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도망쳤던 이맘때의 추위를.

"우리도 참 추웠는데, 이모도 어쩜 이렇게 추울 때 가는지 몰라. 때리는 것도 계절 타나? 막 추워지면 몸이 오들오들 떨리면서 소주병 내려치고 싶어지는건가봐."

"그런거 궁금해 하지 마. 걔네 변명밖에 더 되겠니."

문득 재윤이 생각이 났다. 우리와 맞바꾼 재윤이. 도망 이후의 삶은 궁핍했고 윤경씨는 매일 일을 하러 갔었다. 우리는 여러 시설을 전전하면서 다녔었기에 나는 적당히 집에서 혼자 있었지만 바깥에서 일어나는 그의 매일을 알 길은 없었다. 지금에서야 짐작해보자면, 짐작가는 그대로의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것도 없는 어리고 예쁜 여자가 겪었을 법한 그런거. 어느날은 옆집 윤희 엄마가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었다. 낯선 침대 위에 윤경씨가 누워있었다. 덜컥 겁이 났었다. 덜컥 무서웠다. 덜컥, 덜컥, 심장이 삐그덕거렸다.

"엄마, 죽어?"

죽음은 막연한 공포였다. 맞아도 맞아도 아픈 뺨처럼 익숙해지질 못했다. 상실은 늘 새로운 마음을 멍들게 했다. 엄마가 죽지 않았으면 했다. 윤경씨는 나를 무릎께로 끌어와 앉혔다.

"재은씨, 동생이 생기면 어떨 것 같아?"

"나도 이제 동생 생기는 거야? 너무 좋아!"

"동생이...있었는데. 동생이 너무 가벼워서 엄마가 깜빡 하는 사이에 하늘로 날아가버렸어. 그래서 엄마가 조금 슬퍼서 잠깐 누워있으려고. 재은씨가 좀 이해해줄 수 있을까?"

"하늘로 날아가버린거면 우리 같이 나가서 찾아보자! 나 동생 궁금하단 말이야. 같이 목욕도 하고 싶고 숙제도 하고 싶어."

"나중에 재은씨도 엄마도 나이를 아주 많이 먹으면 그러자. 내일은 재은씨 학교도 가야 하고, 엄마도 일하러 가야 해. 대신 우리 동생 다시 만나는 날 까지 공부도 많이 하고 여행도 많이 가고 맛있는것도 많이 먹어서 동생한테 다 말해주자."

"근데 엄마랑 같이 있으니까 나는 괜찮은데 동생은 혼자라서 어떡해? 심심할거야."

"그러면 우리 동생이 외롭지 않게 이름을 불러주자. 하늘에서는 소리가 되게 잘 들려서 우리가 부를 때 마다 들을 수 있대. 동생은 무슨 이름이 좋을까?"

"음...내 이름이 재은씨고 엄마 이름이 윤경씨니까 재윤씨!"

"재윤. 역시 멋지다 우리 재은씨. 엄마도 너무 좋아. 그럼 이제 우리 재은씨랑 재윤씨랑 윤경씨랑 셋이서 살자."

다음날 일을 마치고 느즈막히 들어온 윤경씨의 손에는 아주 작고 새하얀 함이 들려 있었다. 우리의 작은 셋방에는 그렇게 세 식구가 살기 시작했었다.

"재윤이도 이쯤 갔잖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조금 더 참았더라면. 그 집에서 아팠을지언정 죽지는 않았는데. 아니, 최소한 재윤이를 만날 수 있을 때 까지만 기다렸을걸. 고작 그 몇 달을 참지 못해서 그 아이를 죽이고, 홀로 볕에서 달고 맛난 것들을 먹고 있다는 죄악감에 사로잡힌다.

"재은씨, 우리 재윤이 친구 만들어 줄까?"

재윤이라면 경실이모를 경실언니라고 불러주지 않을까? 이모도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재윤이랑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둘이 열살 차이니까 어쩌면 연인이 될 수도 있겠지.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어린아이를 같이 키울 수도 있겠다. 이런 말들을 조곤조곤 나누며 나는 생각했었다. 윤경씨가 조금은 변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윤경씨, 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윤경씨와 나는 옆에 앉는 좌석을 구하지 못해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내 옆에는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곤히 잠들어 있었고, 윤경씨 옆의 사람도, 아마 이 칸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잠들어 있었던것 같다. 윤경씨도 자고 있는걸까. 답이 없었다.

"윤경씨, 듣고 있어?"

"...듣고 있어."

"듣는데 왜 대답이 없어?"

"듣고 있으니까 대답이 없지."

"말 끝났어."

"그래? 알았어"

처음이었다. 내가 먼저 윤경씨에게 말은 거는 일. 윤경씨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내 생활에 대한 말을 꺼낸 일. 그것도 연애에 대해서 꺼낸 일. 정말 단언컨데 나는 윤경씨의 관심과 사랑을 바란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나에게 침입하는 그의 끈적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씻고 또 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달리 불퉁한 태도는 괜히 나를 불안하게 했다.

"윤경씨, 나 연애한다니까?"

"...알고 있어. 재은씨 방 청소하다가 봤어. 노트북에서 톡."

두근

"만난지는 5개월. 사는 곳은 학교 근처 자취방. 만난건 밴드 동아리. 재은씨는 보컬이고 상대방은 드럼. 경영학과 4학년. 이번 상반기 공채 준비중. 사진같은거는 안 찍을 사람 같더라. 맨날 둘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두근

"이름은 내사랑. 근데 말투가 좀 그렇더라. 뭐랄까, 좀 그런거 있잖아 거기서 느껴지는 격 같은거. 혹시 집이 좀 그러니? 내가 그랬잖아 누구를 만날 때는 그 사람 부모도 같이 봐야한다고. 어리니까 아무나 만나도 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너 그거 모르는 일이다? 깜빡하면 들어서는게 애야."

"...그럴 일 없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아니? 천지신명만 아시는 거지. 그 사랑씨가 프로필에 해 둔 음악도 내가 좀 찾아서 들어봤는데 영 우울하고 별로더라. 사람이 좀 어두운 사람 같아. 그게 한순간이면 괜찮은데 천성이면 좀 그래, 기질이라는게 그렇게 쉽게 바뀌기가 어려워. 그래도 뭐 어디 아픈데는 없는 것 같더라. 애가 너랑 산부인과도 같이 가주는걸 보면 좀 깨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래도 남자애 이름이 사랑이라는것도 좀 그래. 내가 옛날 사람이라는게 아니라 좀 여자애 이름같잖아."

"이름 내사랑 아니야. 그냥 내가 그렇게 저장해둔거야."

"어머 그러니? 어쩐지, 이름이 좀 이상하다 했어. 내씨가 있을리가 있나. 내가 또 재은씨 말이라면 다 믿잖아. 세상 풍파 다 겪으면서 내가 우리 엄마는 안 믿어도 우리 재은씨는 뭐든 다 믿지."

꿀렁. 마음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윤경씨가 뱉은 쓰레기들은 부드럽게 포장되어 도로록 도로록 굴러가 퐁당 하곤 구덩이에 빠졌다.

그는 언젠가부터 내 발 밑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더 단단하고 온전한 흙을 찾아서. 내 발 아래가 무엇보다 안전할 수 있도록. 깊이 아래로 열중했다. 나를 지탱하던 지반은 그의 지반이 되었고, 너무 높이 올라간 그와 그의 삽은 더 이상 나의 바닥에 닿지 못했다. 나는 그새를 못 참고 내리는 비에 잠겼고 눈에 녹았으며 추운 밤은 따듯하게 보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내려주는 매일의 오물과 감정의 잔여물 따위를 먹고 마셨고, 겨우 얼기설기 엮은 잔가지들에 곡예하듯 균형을 잡으며 서 있으면 그의 무거운 배설물들이 한달음에 쓸어내버리곤 했다. 그저 가끔씩 흘러내리는 흙을 몰래 쌓아 한칸 한칸 바깥에 가까워지는 수 밖에 없었다.

꿀렁. 마음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아무리 깊게 다시 파 내려가도, 얼마나 많은것들을 흘려보내도 나에게 닿을 일은 없다. 나는 이제 그 구덩이 안에 없으니까. 문득 그의 득의양양한 얼굴에 말해주고 싶어졌다. 나는 이제 그 안에 없다고.

"이름 이소야. 이이소."

"이소? 남자애 이름이 뭐 그러니, 성도 좀 그렇다 발음하기도 어렵게."

"산부인과는 내가 아니라 이소가 갔어. 부정출혈이 있었거든."

"..."

"사진 찍는 건 좋아해. 그냥 둘이서 찍은걸 어디 보여주기가 뭐해서 그렇지."

"..."

"이소는 나를 사랑해"

"..."

나는 언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모른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선택들의 산물일 수도 있고, 그냥 이리 태어났을 수도 있다. 그런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걷어내면, 다만 나는 언젠가 '나'였고 '내가 나'인 것은 도무지 어찌 할 수 없다는 것만이 남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이 윤경씨를 이해할 수 없었다. 윤경씨는 나를 강박적으로 청소 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들여다보며 어디 한 군데 자신이 모르는 먼지가 쌓이진 않았는지, 어제는 파란색이었던 하늘이 오늘은 비가 오지는 않는지. 자신이 낳은 그대로의 모습, 자신이 전날 배치해 놓은 그대로의 모습인지 아닌지를 점검하는데 온 정성을 쏟았다. 비밀은 반역이었고 선택은 패륜이었다.

그날 윤경씨의 침묵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었을 것이다. 마치 자신은 처음부터 청소하고 있었다는 듯, 탁자 위에 놓은 진심을 교묘하게 숨겨버렸으니까. 나는 그대로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틀 뒤, 이소가 일본에 왔다. 일주일 뒤, 윤경씨의 첫 출근날이었다.

"경실이 이모는 요즘 어떻게 지낸대?"

"글쎄, 안 그래도 어제 전화해보니까 없는 번호라고 뜨더라고. 애가 이럴 애가 아닌데 걱정이 되네."

"나 쉬는 김에 엄마랑 여수라도 다녀올까?"

"좋지. 엄마 너희 아빠랑 연애할때나 한번 다녀오고 말았어. 엄마랑 여행도 가고, 철들었네?"

"아빠랑 연락해?"

"이혼했는데 연락은 무슨, 그 인간이 좀 욱해서 그렇지 사람은 좋았어. 맘이 약해서 누구 해칠 사람은 아니었지."

"나 이번에 애인 생겼어."

"어머 그래? 미리 말하지. 이름이 뭔데?"

"재윤이. 나랑은 다섯살 차이나."

"그럼 거의 새내기 아냐? 우리 딸 능력있네."

깨끗이 비운 밥그릇 위에 놓여있던 김치 한 조각을 다시 몰래 김치찜으로 되돌려두었다. 깔끔하게 치워진 식탁 위에는 참외가 올려져 있었다.

"참외네."

"그래 엄마가 너 임신했을 때 얼마나 먹었는지 몰라. 자 여기, 포크."